2011년 3월 29일 화요일

"가난하다…죽는 것도 부담스럽다"

나는 곧 죽는다. 87세, 이 나이에 폐렴에 걸리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어제는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예순이 넘은 큰딸이 떠 주는 죽을 깍두기와 함께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오늘은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다. 손발이 차갑다. 의사가 딸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나는 기초생활수급자다. 장애가 있는 아들과 부산 동구 수정동 산동네 낡고 허름한 집에서 살았다. 두 사람에게 나오는 수급비 60만 원으로 버텨왔다. 지난 겨울 강추위에 보일러가 터져나갔다. 보일러 고칠 돈이 없어 전기장판으로 추위를 견디다 결국 폐렴에 걸렸다. 그냥 집에서 죽고 싶었다. 하지만 딸이 지난 23일 나를 병원으로 데리고 왔다. 폐렴이 너무 많이 진행돼 이제 돌이킬 수 없었다. 꼼짝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

나의 죽음이 임박하자 딸은 97년에 가입했던 'B 상조'를 생각해냈다. 없는 살림에 1만 원씩 2만 원씩 꼬박꼬박 부은 것이 137만 원이나 됐다. 그러나 전화하면 한 시간 안에 도착하겠다고 약속했던 상조회사 대표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전화번호도 없어졌고, 회사도 없어졌다. 부산시청에서는 공제회에 등록돼 있는 상조업체가 아니라 구제를 받을 길도 없다고 했다.

큰딸 김경선(62. 가명)은 고1인 손자, 초등 5학년인 손녀 두 명과 함께 초량동 산동네에서 힘겹게 살고 있다. 김경선의 큰딸은 남편과 이혼한 뒤 손자 손녀만 덩그러니 남겨놓고 도망가 십 년 넘게 무소식이다. 한 달에 60만 원으로 세 식구의 생계를 꾸려가는 딸이 한숨을 쉰다. 나의 죽음보다 죽음 이후에 들어갈 장례비용이 딸의 마음을 더욱 짓누른다. 딸에게는 당장 9만 원짜리 싸구려 관(棺) 하나 살 돈도 없다. 내가 죽고나면 장의차 비용이며 염습에 입관에 각종 비용이 들어가는데 어떻게 해야하나. 한숨 쉬는 딸을 보니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내 형편이 기가 막힌다.

큰딸이 병원 옆에 있는 부산YMCA 상담소를 다녀왔다. 혹시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것이 없을까 싶었던 모양이다. 지원이 있긴 있었다. 부산시에서 운영하는 영락공원에서는 빈소와 화장시설, 납골당 등의 각종 시설 사용료를 감면해준다고 했다. 하지만 운구차부터 염습과 입관 등 장례식에 필요한 서비스는 모두 유료다. 아무리 돈을 안 써도 120만 원 정도는 든다고 한다. 내가 죽고 나면 나라에서 50만 원이 나온다고 하는데 그걸로도 내 장례비용을 충당하기에는 부족하다.

나는 이미 혼수상태에 들었다. 하지만 죽고 나서도 자녀들에게 짐이 될 것을 생각하니 죽는 것도 부담스럽다. 장례비는 그렇다치고 병원에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입원비도 늘어만 간다. 지긋지긋하게 내 인생에 들러 붙었던 가난은 죽을 때까지도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 죽음도 부담스러운 가난, 방법은 없나? 

가난은 죽음으로도 끊을 수 없다. 사망 이후에도 최소한의 장례비용이 필요한데 그 비용마저 감당하지 못하는 극빈층이 적지 않다.

국가에서는 국민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사망할 경우, 검안과 운반, 화장(또는 매장) 등 장제조치에 필요한 금품을 지급하는데, 근로능력이 없는 가구에는 장제급여 50만 원이 지급된다. 또 장의차 비용을 댈 수 없는 경우는 대한적십자사에서 운영하는 무료장의차를 신청할 수 있다.

부산시는 '부산시광역시 장사등에관한조례'(6조)에서 기초수급자에 대해 영락공원의 시설 사용료를 감면해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초수급자는 빈소와 화장장, 납골당 등 시설 사용료를 감면받게 된다.

그러나 염습과 입관 등 장례 서비스는 모두 유료로 제공되고, 수의와 관도 상주가 직접 준비해야 한다.

부산 영락공원 관계자는 "각 사례마다 차이는 있지만 사용료 감면을 받아도 최소 70만원에서 120만원 정도는 든다"고 말했다.

50만 원의 장제급여는 실제 최소한의 장례를 치르는데도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게다가 적십자사의 무료 장의차도 신청자가 너무 많아 이용에 한계가 있다.

큰딸 김 씨는 "무료 장의차 신청이 많아서 며칠씩 대기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며 "차례를 기다리느라 병원 안치실에 시신을 보관하게 되면 안치비용이 추가로 들기 때문에 이러나 저러나 돈이 들어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방법은 없을까. 김 씨를 상담했던 부산YMCA 시민중계실 황재문 실장은 전남 신안군의 '공영장례제도'를 소개했다.

전라남도 신안군은 전국에서 최초로 지난 2007년 5월, 사망 후 복지개념을 적용한 '신안군 공영장례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장례를 치르기 어려운 저소득 가구를 위한 지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신안군은 장례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음식을 현물로 선(先)지원한 뒤 사후에 정산처리하는 방식으로 건당 최대 150만 원까지 지원하고 있으며, 특히 지원대상을 기초수급자 뿐 아니라 독거노인, 장애인, 차상위 계층 등으로 넓혔다.

황재문 실장은 "장례비용조차 댈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가정이 지금도 적지 않은데 최근 상담을 하다보면 가계부담 급증 등으로 향후 몇 년 안에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가구가 더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황 실장은 "신안군이 공영장례지원을 위해 일년에 편성하는 예산은 3천만 원 안팎에 불과하다"며 "평생 가난에 시달린 사람이 최소한 죽음만큼은 존엄하게 맞을 수 있도록, 부산시와 각 구군에서도 사후(死後)복지 제도를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에필로그

하 할머니는 기자가 취재를 다녀간 직후인 지난 25일 운명했다. 큰딸 김 씨는 급한대로 여기저기 돈을 빌려 장례를 치렀고, 시설 사용료 감면을 받고도 장례비용이 150만 원이나 들었다. 유골함 살 돈도 아쉬워 유골은 그냥 고향에 뿌렸다. 손자 손녀와 함께 한 달에 60만 원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김 씨는 어머니의 장례 이후 갚을 길 없는 빚더미에 앉았고, 그 고통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부산YMCA는 김 씨에게서 회비만 받고 잠적한 B상조의 행적을 파악 중이며, 납부한 상조회비 137만 원을 돌려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또 김 씨와 비슷한 사례가 계속 나올 것으로 보고, 부산시에 기금마련과 함께 공영장례 제도 도입을 위한 조례제정 운동 등을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